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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ie's Books

[Toshinao Sasaki]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

오늘 창문을 열어 두고 봄비 소리를 들으면서 김치볶음밥을 먹다가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시작한 《미친 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을 봤어. 가수 성시경과《고독한 미식가》의 마츠시게 유타카가 서로의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이 집, 찐맛집이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 그릇의 음식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깊은지 실감하게 만들더라고. 음식을 맛보는 순간순간의 즐거움이 짧은 여행처럼 아주 행복해 보였어.

 

귀여운 맛찌개상

 

그렇지 않아? 어떤 음식은 옛 기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어떤 음식은 그 순간의 우울한 기분을 살짝 끌어올려 주기도 하고. 결국, 잘 먹는다는 건 잘 산다는 것과 닮아 있구나 싶어.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어. 중요한 건 거창한 미식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순간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는 걸 말이야.

 

 

"만약 이처럼 많은 사람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면, 그 흐름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먹는 것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벌어지고, 나아가 우리의 생활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p.14)

 

 

예전에는 좋은 식문화라면 비싼 재료와 근사한 레스토랑이 떠올랐잖아. 그런데 이제 조금씩 변하고 있는 듯해. 집에서 직접 끓인 된장국, 혼자 사는 친구가 보내준 반찬, 동네에서 오래된 국밥집 같은 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잖아. 이 책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 화려한 미식보다 따뜻한 한 끼, 부담스럽지 않은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야. 어떤 날엔 바쁜 하루를 마치고 컵라면 하나에 삶이 녹아들기도 하고, 때론 그런 사소한 한 끼가 의외로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하잖아.

 

 

"때로는 ‘오늘은 날씨가 더우니 산뜻한 것을 먹어 볼까?’ 하는 막연한 감정의 욕구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무언가 마음속에 성가신 일을 안고 있어 쇼핑으로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훌쩍 편의점에 가서 눈에 들어온 단팥빵이나 탄산수를 사는 단순한 행위가 때로는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p.124)

 


 

 

이 책은 단순히 먹는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지. 물건도, 관계도, 공간도 너무 많이 쥐고 있으면 오히려 불편해지잖아. 그래서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것도 같아. 덜어낼수록 더 본질적인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니까.

 

그래서일까, 책에서는 작은 집으로 이사 간 사람이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 집이 작아지니까 자연스럽게 바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사람들과 더 자주 어울리게 됐다고 하더라고. 꼭 집이 아니라도, 삶의 공간이 가벼워질수록 오히려 더 넓어지는 것 같아.

 

 

"전에 큰 집에서 살 때에는 가족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집에서 일어났어요.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작기 때문에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적습니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져서 집 밖의 정원에서 파티를 열기도 하고, 놀기도 합니다." (p.208)

 

 

예전에는 더 넓은 집, 더 많은 물건, 더 많은 경험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어. 빡빡하게 살기보다 여유를 두고, 적당히 흐르듯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져. 느슨하지만 오히려 더 단단한 삶, 가벼워졌지만 더 풍요로운 삶. 삶의 무게를 덜어낼수록 더 많은 것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게 아닐까? :)

 

 

"새로운 도시에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공동체가 요구됩니다. 이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생활을 강철 문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지방’을 완충지대로 삼아 밖을 향해 열어 놓고,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풍요로움을 찾는 생활입니다." (p.229)

 

 


 

 

느긋하게 읽은 이 책도, 《미친 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허겁지겁 삼키지 않고 한 입 한 입을 음미하는 삶, 몸을 조이는 옷 대신 숨 쉬는 옷을 입는 삶. 화려한 맛이 아니라 마음을 데워주는 맛, 요란한 행복이 아니라 스며드는 충만함. 바쁜 하루에도 잠시 멈춰서 한 그릇의 따뜻함을 느낄 줄 아는 것.

 

우리가 진짜 바라는 건, 삶을 입안에서 굴려가며 그 깊은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 그리고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일이 아닐까? 결국, 인생도 먹는 거랑 다를 게 없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