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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ie's Books

[Maruyama Kenji] 물의 가족 : 물결에 스며든 기억

《물의 가족》을 읽는 동안, 쿠사바 마을 어딘가에 조용히 앉아 물소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어.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의 감정 속으로 쿠바사 마을의 물이 조금씩 스며들고,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게 느껴지더라. 그 물결을 따라 위로가 번져가고, 잔잔한 치유가 마음을 적시는 순간들이 많았어. 지친 마음을 누군가 가만히 어루만지는 것처럼.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청년이 있어. 그는 평생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살아갔는데 결국 감정의 무게가 그를 마을에서 떠나게 만들었어. 그렇게 떠난 끝에 외딴곳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 그는 물속에 떠도는 영혼처럼 마을을 헤매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 가족을 향한 그리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 그리고 결국 어떤 것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다는 쓸쓸한 깨달음이 물결처럼 이어지는데, 그게 참 먹먹하더라.

 

이 작품에서 물은 청년의 후회와 상처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고, 조용히 치유를 건네는 존재처럼 다가와. 그가 머물렀던 작은 방도 인상적이었어. 그 안에는 말로 표현되지 못한 외로움과 비밀이 가득 차 있었고, 오랫동안 쌓인 슬픔이 스며들어 있었어. 그의 곁을 맴돌던 거북이도 인상적이었어. 거북이는 무언의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녀. 걸을 때도, 멈춰 설 때도, 심지어 물속에서도 떠나지 않아. 죄책감이란 게 그렇듯,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등 뒤에서 천천히, 끈질기게 따라오며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야. 물속에서도 흐릿한 실루엣으로 흔들리며 그를 향해 다가오는 장면들은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해서 마음이 묘하게 저려왔어.

 

그런데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우리 모두 저마다의 상처와 후회를 안고 살아가잖아. 그러면서도 결국은 어딘가로 흘러가야 하지. 마루야마 겐지는 그런 인간의 내면을 자연과 함께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야.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삶과 죽음이 경계를 허물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걸 느낄 수 있어. 《물의 가족》에서도 그랬어. 청년의 고통은 물에 녹아 흘러가고, 그는 물과 하나가 되며 모든 걸 받아들이지. 물이 모든 기억과 감정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면서,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과거까지도 품어주는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더라. 

 

한 문장, 한 장면이 스며들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림처럼 퍼져나가더라. 그 울림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맴돌고 있어. 담담한 문장 속에서 인물들의 내면이 서서히, 선명하게 떠올랐어.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지만, 한 번쯤 이 물결에 몸을 맡겨보면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덮고 나니,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들도 조용히 흘러가는 듯했어. 새해의 시작을 이런 물결 속에서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