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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ie's Books

[Bohumil Hrabal]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나만의 퍼펙트 데이

멀리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가을이 다가와. 작은 바람결에도 가을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하늘은 높아지고 투명해졌어. 계절이 바뀔 때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경계가 어디쯤 일지, 그 끝이 어디일지 궁금해져. 이렇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떠오를 때면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떠오르곤 해. 역설적인 제목이 오늘의 내 마음 같아서일까.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p.18)

 

 

이 소설은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는 한차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한차는 무려 35년 동안 폐지 처리 공장에서 일하면서 책과 종이들을 압축하는 단조로운 삶을 살아. 종이를 압축한다는 건, 지식과 생각을 쌓아올려도 결국 짓눌려 사라지는 현실의 허무함을 상징하는 걸까.

 

 

 

 

 

 

 

한차는 스스로를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로 묘사했지만,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필요로 했던 것은 생각들로 가득 찬 고독이 아니라, 그 고독 속에서 벗어나게 해 줄 평범한 하루의 따뜻함이었을지도 몰라. 집시 여자와 함께한 그 하루는 그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이나 사랑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었을 거야.

그러나 그가 고독 속에서 발견한 소중한 시간들도 결국 그가 바랐던 소박한 행복과 충돌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그의 지식과 사랑이 현실에서 무겁게 다가온 이유는 사회적 억압과 고립된 현실이 그의 자유를 더 힘겹게 만들었기 때문이겠지. 요즘 나도 뉴스를 보지 않게 되더라. 사회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아. 그래서 그에게 자유는 언제나 가볍지 않았어. 오히려, 고독 속에서 얻은 자유는 한차에게 마치 묵직한 돌덩이를 가슴에 얹어놓은 듯한 무거운 짐이 되었을지도. 그는 고독을 피난처로 삼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내면의 세계를 쌓아갔지만, 이 모든 과정이 그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그를 그렇게 밀어낸 것인지는 아직 의문이야.


 

결국, 이 소설은  반복된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어. 한차가 갈망했던 평범한 하루의 따뜻함과 고독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이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존재의 해방 아닐까. 그 해방의 순간조차 그에게는 가벼운 것이 아닌 무거운 책임처럼 다가왔을 거야. 진정한 자유란, 어쩌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가장 무거운 짐일거야.

 

이런 맥락에서, 보후밀 흐라발은 프라하의 봄 이후에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썼어. 망명을 선택한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고향에 남아 자신의 신념을 지켰지. 그래서 그의 작품은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아. 그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어.

 

 

보후밀 흐라발, 정말 멋지세요..

 


 

이 글을 쓰면서 최근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떠올랐어. 영화 속 주인공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나무를 키워가며 자기만의 자유와 평온을 찾고 있었어. 우리 모두 각자의 고독을 견디며 작고 연약한 자유의 나무를 키워가고 있는지도 몰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나무를 가꾸는 오늘 -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퍼펙트 데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