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ggie's Books

[SF] 기계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술이 만든 디스토피아의 경고

 

무더운 여름, 태양이 하늘을 불덩이처럼 달구고, 공기는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후끈해. 바람은 한 점 없고, 나뭇잎들도 움직일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아. 그런데 그 속에서 매미 소리가 귀에 박히게 울려 퍼지지. 한낮의 열기가 길게 이어지는 이 지독한 더위 속에서, 잠시나마 그늘을 찾아 숨을 돌려보지만, 그 그늘도 더위를 막아주지는 못해.

그래서 난 현실을 잠시 잊고 SF의 세계로 빠져들었어. 광활한 우주와 시간,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선 더위도 잊혀지고, 머릿속엔 차가운 별빛이 가득해지지. 그렇게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이 지독한 더위도, 현실도 희미해져. 그런 느낌이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제임스 카메론의터미네이터》

그리고 류츠신의 《삼체


 

 

 

 

기술이 우리 삶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U.R.)》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20세기 초반, 모든 게 빠르게 변하던 시기에 그런 질문을 던졌어.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 1920년에, 《멋진 신세계》가 1932년에 발표됐지. 두 작품은 기술 발전이 인간 사회에 어떤 위험을 던져줄지 경고하고 있어. 차페크와 헉슬리는 기술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 그들이 그린 미래는, 여전히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어.

시간이 좀 지나서, 1984년에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가 나왔어. 이 영화는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얻고 인간을 위협하는 미래를 보여줬지. 차페크와 헉슬리가 던졌던 질문을 더 확장한 셈이야. 냉전 시대의 핵 위협과 급격한 기술 발전 속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줬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 불안감은 아직도 생생해.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이, 언제든 우리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후, 21세기에 들어서며 류츠신의 《삼체》가 2008년에 등장했어. 차페크와 헉슬리가 기술의 위험을 경고했고, 《터미네이터》가 기술이 인간을 넘어설 때의 공포를 상상했다면, 《삼체》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갔지. 인류가 만든 기술만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기술적 위협이 어떻게 우리를 흔들 수 있는지를 탐구한 거야.

이런 외부의 위협을 다룬 또 다른 예로는 1996년에 개봉한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가 있어. 이 영화는 외계 문명이 지구를 침략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줘. 그 뒤를 이어, 드니 빌뇌브의 영화 《Arrival》(2016)도 떠오르지. 이 영화는 외계 존재와의 접촉이 가져오는 언어적, 문화적 충돌뿐 아니라, 그들이 전해주는 기술과 지식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어.

《삼체》, 《인디펜던스 데이》, 그리고 《Arrival》 모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기술적 위협이 얼마나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한지를 강렬하게 보여준 작품들이지.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외부에서 온 기술적 위협이 우리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돼.

이런 맥락에서, 《삼체》에서 다룬 문제는 차페크, 헉슬리, 그리고 《터미네이터》에서 다룬 기술적 위협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어. 다만 《삼체》에서는 그 위협이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외부, 즉 외계에서 온 거라는 점이 차이점이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예측하기 힘든 위협이니까, 그 공포는 훨씬 더 크지 않겠어?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도 흥미로워. 헬레나와 도민의 상반된 태도는 특히 인상적이야. 헬레나는 로봇에게 감정과 인권을 부여하려 하고, 도민은 로봇을 인간의 도구로만 보지. 이 둘의 태도는 각자의 한계를 드러내고, 결국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돼. 헬레나의 이상주의는 현실을 무시하고, 도민의 실용주의는 인간성을 외면해. 둘 다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둘 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삼체》도 기술과 과학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다루고 있어. 외계 문명이 지구를 침략하려는 위기를 통해, 우리가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묻고 있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기술적 위협이 얼마나 복잡하고 두려운지를 느끼게 해.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인류가 기술을 어떻게 관리하고, 그 책임을 어떻게 다해야 할지 고민하게 돼.

결국,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멋진 신세계》, 《터미네이터》, 그리고 《삼체》는 각기 다른 시대와 배경에서 나왔지만, 모두 기술이 인간성과 사회에 미치는 깊은 영향을 경고하고 있어. 기술의 발전이 단순한 편리성을 넘어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기술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야.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가 그 경고를 무시한다면,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두울 수 있어. 기술이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지만, 그 힘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지 않도록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단순히 편리함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질, 즉 우리의 인간성일 수도 있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인간성, 즉 감정, 도덕, 책임감 같은 것들이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인간성을 잃어버린다면 그 기술은 오히려 우리를 파괴할 수 있어. 그래서 이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어떻게 인간성을 지켜낼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