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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ie's Books

[W.G. Sebald] 어둠 속의 작은 불꽃: 아우스터리츠와 기억의 잔상

... 아우스터리츠가 차 쟁반을 들고 들어와서 얇게 썬 흰 빵을 토스팅 포크에 끼워 프른 가스불에 그을리는 동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자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종종 밤이 시작되면 여기 이 방에 앉아 바깥의 어둠 속에서 반사되는, 겉으로는 움직이 않는 한 점 빛을 바라볼 때면 여러 해 전에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의 렘브란트 전시회에서 무수히 복제된 큰 대작 앞에 머무르는 대신, 그가 기억하기에 더블린의 소장품에서 나온 약 20에서 30센티미터 정도의 그림 앞에 서 있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제목에 따르면 이집트로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는 그 그림에서 그는 예수의 부모나 아기 예수도, 나귀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단지 어둠의 검게 빛나는 니스 칠 속에서 아주 작은, 내 눈에서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는 불꽃만을 보았어요, 라고 대답했다. (p.134-5)

 

 

제발트가 지정한 책의 표지 사진

 


《아우스터리츠》를 읽으면서, 특히 이 문단에서 느낀 건 시간과 기억의 복잡한 얽힘이었어. 아우스터리츠가 차를 준비하며 과거의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한 점 빛을 떠올리는 장면은, 그가 기억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처럼 보여. 그 작은 빛이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흔적들이 있는 거지.

렘브란트 전시회에서 큰 대작 대신 작은 그림 앞에 서 있던 아우스터리츠의 모습이 그걸 잘 보여줘. 많은 사람들은 화려하고 큰 그림에 매혹되지만, 아우스터리츠는 그보다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기억을 건드리는 작은 불꽃에 이끌렸던 거야. 제발트가 언급한 그림은 렘브란트의 이집트로의 도피 장면을 그린 작품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커. 크기가 작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꽃이 강조된 그림이라면, 렘브란트가 그린 판화나 소품 중 하나일 수 있지. 그러나 이 그림이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일지, 아니면 제발트가 상징적으로 창조해낸 것일지 확실하지 않아. 제발트는 종종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곤 했으니까.

 

Rembrandt, flight into Egypt

 

 

어쩌면 이 작은 불꽃은 아우스터리츠 자신이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소중한 기억이나 감정일지도 몰라. 우리가 때때로 거대한 것보다는 작고 개인적인 것에 더 깊이 공감하고 끌리는 것처럼, 아우스터리츠도 그렇게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 작은 불꽃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기억 속 어둠을 탐험하고 있는 거야. 이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그가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하지 않아? 그리고 그 작은 빛은, 그가 아직 잃지 않은 인간성이나 희망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제발트는 《아우스터리츠》를 통해 독자가 주인공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도록 이끌어. 화려한 외부 세계보다는, 그가 내면에서 붙잡고 있는 작은 빛,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살아남은 불꽃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느껴지거든.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어둠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작은 빛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거지.

 

《아우스터리츠》는 제발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기도 해. 이 소설을 통해 제발트는 시간, 기억, 인간성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을 남겼어.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 자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비극적 장소를 연상시키지. 이 이름은 역사적 기억의 무게를 짊어지면서, 동시에 개인의 상처와 기억을 담고 있어. 이 소설이 제발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고 그 속에서 작은 불꽃을 발견하는 과정은 제발트 자신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과 기억을 돌아보며 찾은 어떤 진실일지도 몰라.

 

결국, 《아우스터리츠》는 제발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질문이야.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작은 빛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작은 빛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은 우리에게 그 답을 찾으라고,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조용히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