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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ie's Movies

[Demolition, 2015] 슬픔에 대한 색다른 해부학

 

 

 

영화 《데몰리션》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룬 방식은 꽤나 독특하고 신선했어.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가 사고로 아내를 잃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슬픔의 형태와는 꽤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거든. 그는 무언가에도 감정을 쏟지 못한 채 무감각하게 자신의 삶을 해체하기 시작해. 애도와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슬픔이란 게 단순히 울고 아파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 무언가가 서서히 풀어지고 흩어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해.

 

눈에 띄는 건, 그의 '분해'하는 행동이야. 고장 난 냉장고나 작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살펴보는데, 그게 단순히 겉모습을 분해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쪼개보고 들여다보는 행위 같아 보여. 가만 보면 사람도 스스로를 이렇게 해체해보지 않으면 진짜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분해해서 부서지는 게 끝이 아니라, 그 잔해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걸음처럼 보여. 나에게 이 영화가 주는 느낌은 그랬어. 

 

그리고 데이비스가 우연히 병원 자판기 회사의 고객센터 직원이랑 연결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결로 흘러가. 두 사람의 만남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고, 엉성한데도 묘하게 따뜻한 결이 있었어. 서로가 조금씩 균열을 드러내면서 의지하는 모습이 삶의 새로운 단서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참 오묘(?)했어.

 

무엇보다 영화의 마지막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데이비스가 스스로를 해체한 후 그 조각들을 하나씩 다시 이어 붙이는 느낌이랄까. 그 장면은 부서짐이 끝이 아니라 재건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그게 아주 조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렬했어. 어떤 슬픔은 이렇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뤄야만 치유가 시작된다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준 것 같아.

 


 

 

 

 

  • 원제: Demolition
  • 개봉 연도: 2015년
  • 감독: 장-마크 발레 (Jean-Marc Vallée)
  • 주연: 제이크 질렌할 (Jake Gyllenhaal), 나오미 왓츠 (Naomi Watts), 크리스 쿠퍼 (Chris Cooper)
  • 장르: 드라마
  • 줄거리 요약: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감정을 잃은 듯한 상태로 살아간다. 고장 난 자판기 회사에 보낸 클레임 편지를 계기로 고객 서비스 담당자 캐런(나오미 왓츠)과 알게 되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점차 삶을 재건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