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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ie's Diary

[250921] 무화과의 맛

하얀 스티로폼 상자를 열자, 연둣빛이 은은하게 도는 보랏빛 껍질들이 둥글게 겹겹이 쌓여 있었어. 아빠가 매년 이 계절이면 보내주는 무농약 무화과. 여름에는 사과를, 가을에는 늘 이렇게 무화과를. 계절마다 택배로 도착하는 과일 상자는 아빠가 보내는 계절 달력 같아.

 

무화과 하나를 집어 들면, 표면은 매끄럽지만 어딘가는 거칠고, 꼭지는 살짝 마른 듯 말려 있지. 이 모양이 늘 조금은 낯설어. 사과보단 못생겼지.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손끝에서 이 거친 촉감을 느끼는 순간, 마음에 알 수 없는 차분함이 내려앉아. 올해도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차가운 물로 씻은 싱싱한 무화과 칼로 반을 가르면, 속은 붉고 촘촘하게 박힌 씨앗들로 가득 차 있어. 처음 본 사람이라면 잠깐 멈칫할지도 몰라. 뭐랄까. 작은 우주 같거든. 이 붉고 하얀 속살 안에 빛과 어둠이 동시에 갇혀 있는 듯한 모습.

 

입에 넣는 순간, 무화과는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 단맛은 직선으로 치고 들어오지 않고, 물결처럼 번져나가. 오래된 햇살이 과육 속에서 천천히 녹아 나오는 느낌. 씹다 보면 톡톡 터지는 씨앗들이 고소한 리듬을 만들고, 이 작은 울림이 단맛을 흔들지. 마지막엔 쌉싸름한 그림자가 남아, 방금까지의 달콤함을 점점 더 선명하게 만들어.

 

이렇게 무화과를 먹을 때마다, 나는 늘 계절을 삼키는 기분이야. 여름이 입 안에서 사라지고, 바람이 서늘해지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과일 하나가 계절로 확장되는 순간. 그래서 나에게 무화과의 맛은 그저 달콤함이 아니야. 무화과는 가을의 언어고, 시간이 남기는 여운이야.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나한테 이렇게 속삭여. 진짜 가을이 왔다고.

 

무화과 - 어쩜 이렇게 생겼니

 

 

 

떡볶이랑 먹어도 짱짱 맛있어

 

 

 

집 앞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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