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두 번째 책
..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보다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남겨진 얼룩같은 흔적들을 무엇이라 규명할 수 없기 때문일까.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을 말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인선과 경하의 육체적 고통들이 - 끔찍한 편두통과 위경련, 손톱 아래 3초마다 찔러 넣는 깊숙한 바늘의 통증 등 - 그대로 전달되어 단숨에 읽기 어렵고 우울했다. 날것의 감각들이 낮고 간결한 목소리로 읽힐때면 육체의 표면적 통증보다 더 극렬한 내면의 상처가 소리없이 존재하는 듯 하여 마음이 먹먹해졌다.
소복이 쌓여 덮이는 눈.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하얗게 덮어주는 차가운 눈은 인선의 영혼이 하는 말처럼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라고 말해준다. 눈 사이 사이의 텅빈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들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다. 침묵함으로 더 확실한 대답을 하는 모습에서 여지조차 주지 않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소설 속 주인공들과 찰떡처럼 어울리는 표현법이다. 새하얗게 변했지만, 떠나간 사람과 잊혀진 역사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나에게 새겨졌다. 역사도 사람도 끝났지만 전혀 끝난 것이 아니다.
[ 아래는 한강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 ]
한강 :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 인데, 결국 제가 닿고 싶었던 마음은 그 마음이거든요. 작별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느껴주시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또 소설이 물론 무겁고 고통스러운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제가 이 소설을 쓸 때에는 아주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에 대해 많이 묘사했어요. 예를 들면 눈이라든지, 눈송이의 질감이라든지, 촛불의 불빛이라든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라든지, 우리의 몸이 닿을 때 느끼는 체온이라든지. 그런 부드러움과 온기에 대해서, 그런 질감들에 대해서 많이 묘사를 했거든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그 사건에 다가가고 있는지 감각을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강 : 저는 글을 쓸 때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감각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문장을 쓸 때 저의 감각을 그 안에 전류처럼 흘려 넣으면 그게 읽는 사람한테 전달이 되는 것 같고, 그건 문학이 가진 굉장히 이상한 현상인 것 같아요. 내면으로 들어가서 저의 감각 감정 생각을 쓰면, 그게 번역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죠. 그게 그냥 문학이 만들어내는 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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